전 세계의 스포츠 팀, 선수 중에 가장 라이벌이라고 하면 누구일까? 프리미어리그의 맨유와 리버풀?, 스페인 라리가의 레알마드리와 바로셀로나? 이탈리아 세리아 A 의 밀란 가족들…. 국가간에도 역사적인 원한 관계를 배경으로 한 라이벌 관계가 있다. 90년대들어 일본이 한국 축구를 일시적으로 앞선 적이 있었다. (물론 한국이 맘먹고 달려든 월드컵 지역 예선 등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 때 일본인들은 월드컵을 우승한 것처럼 좋아했지만 반대로 WBC 에서 야구가 한국에 연전 연패 할 때는 거의 나라가 망한 것처럼 희망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스포츠는 어쩌면 라이벌이 없다면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라이벌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그들은 발전하게 되면 팬들에게 끊임없는 흥미 거리를 제공하고 관중들을 운동장으로 끌어들인다. BOSTON RED SOX, 아마도 전 세계에서 그들처럼 재수 없는 그리고 하나의 징크스가 그렇게 오랫동안 따라 다닌 구단도 없을 것이다. BOSTON 과 NEW YORK, 이웃 사촌이지만 반드시 이겨야 할 앙숙인 두 구단… YANKEES 를 알려면 빨강 양말 RES SOX 를 알아야 한다. 양키스에 대한 네이버 (http://www.naver.com) 두번째 칼럼은 바로 이 지긋지긋한 보스턴에 대한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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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화) – 양키스의 운명을 바꾼 10장면
2부(수) – 양키스와 보스턴, 라이벌의 역사
3부(목) – [레전드 스토리] 베이브 루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9년간, NBA는 매직 존슨의 LA 레이커스(5회 우승)와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3회 우승)의 라이벌전을 위한 무대였다. 1980년대를 지배한 ‘테니스 여제’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에게는 80번을 만나 3번밖에 더 이기지 못한(43승37패) 라이벌 크리스 에버트가 있었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가 만들어낸 3번의 명승부는 그들을 복싱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로 만들었다.

실력이 출중한 두 상대가 자주 부딛칠 때 비로소 라이벌 관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실력’에 바탕을 둔 라이벌 관계는 실력에서의 팽팽함이 유지되어야지만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실력에서의 균형이 중요하지 않은 라이벌 관계도 있다. 서로에 대한 ‘원한’으로 맺어지는 경우다.

미국 대학 미식축구에서 미시건 울버린스와 오하이오 스테이트 버카이스는 미국 스포츠를 통틀어 최고로 꼽히는 라이벌 관계다. 상대 전적에서는 미시건이 꽤 많이 앞서지만, 1922년 미시건이 오하이오 스타디움의 개장경기를 망치면서(22-0 승리) 둘 간의 감정 싸움이 시작됐다.

‘원한’은 바로 양키스와 보스턴의 라이벌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다.

1기(1901~1919) 20년 : 리그를 지배한 보스턴
우승 – 보스턴(리그 6회, WS 5회) 양키스(리그 0회, WS 0회)

보스턴의 출발은 대단히 순조로웠다. <보스턴 글로브>의 전폭적인 투자를 등에 업은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에서 출범 후 첫 20년 동안 리그 우승을 가장 많이 한 팀이었다. 특히 1903년 제1회 월드시리즈를 포함해 5번 오른 월드시리즈에서 모두 승리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1876년부터 보스턴을 지켜온 브레이브스를 제치고 보스턴 최고의 인기 팀이 됐다. 그에 비해 양키스가 1919년까지 거둔 최고의 성적은 2위 3번이 고작이었다.

1915년 양키스는 제이콥 루퍼트에게 46만달러에 팔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 보스턴은 해리 프레지에게 60만달러에 팔렸다. 양키스를 사랑한 루퍼트와 연극사업이 더 중요했던 프레지의 선수 거래는 두 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프레지가 양키스로 넘긴 선수는 사실상의 마운드 전체(칼 메이스, 허브 페노크, 조 부시, 샘 존스, 베이브 루스)와 주전 타자 4명(포수 3루수 유격수 우익수)을 포함해 무려 11명에 달했다. ML 최초의 대규모 파산 세일을, 그것도 한 팀에만 몰아준 것이었다. 보스턴 팬들은 프레지에 분노했고 양키스를 저주했다.

*프레지가 처음부터 ‘파이어 세일’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프레지는 루스를 양키스에 12만5000달러에 팔면서 펜웨이파크를 담보로 30만달러를 빌렸는데, 그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결국 선수들로 지불했다.

2기(1920~1933) 14년 : 보스턴, 나락으로 떨어지다
우승 – 양키스(리그 7회, WS 4회)
보스턴(리그 0회, WS 0회)

기둥뿌리까지 내준 보스턴이 정상적인 팀일리 없었다. 보스턴은 1922년부터 1933년까지 12년간 리그 꼴찌만 9번을 했다. 꼴찌를 피한 세 시즌 역시 7위 2번과 6위 한 번이었다(당시는 리그당 8팀). 특히 1932년에는 43승111패(.279)를 기록했는 데, 우승 팀 양키스(107승47패)와는 무려 64경기 차였다.

그에 비해 첫 20년간 한 번의 리그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던 양키스는 1921년부터 1932년까지 12년간 7번 리그를 제패하고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 12년간 양키스가 1위 또는 2위에 실패한 것은 단 두 시즌에 불과했다. 그렇게 양키스는 하늘로 올라갔고, 보스턴은 지옥을 경험했다.

1923년 양키스타디움이 문을 여는 양키스의 축제날. 7만4200명의 구름 관중 앞에서 양키스는 보스턴을 상대로 4-1의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루스는 개장 첫 홈런(스리런)을 때려냈다. 두 팀의 달라진 처지를 단축해서 보여준 경기였다.


3기(1934~1966) 33년 : 번번히 저지된 보스턴의 반격
우승 – 양키스(리그 22회, WS 16회)
보스턴(리그 1회, WS 0회)

어둠속을 헤매던 보스턴에 마침내 서광이 비췄다. 1934년 정렬적인 구단주 톰 야키가 구단을 인수한 것. 야키는 1935년 레프티 그로브와 조 크로닌, 1936년 지미 팍스 등 명예의 전당 선수 3명을 데려왔다. 1934년 16년 만에 5할 승률에 성공한 보스턴은 1938년, 마침내 리그 정상권 팀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보스턴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양키스의 전력이 너무도 강한 것이었다. 1938년부터 1949년까지 12년 동안 보스턴은 6번이나 2위에 그쳐 리그 우승과 월드시리즈 티켓을 놓쳤는데, 그 중 5번은 양키스에게 밀린 것이었다.

1948년 보스턴은 양키스를 3위로 밀어내고 클리블랜드와 공동 1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원게임 플레이오프에서 패했다. 1949년 보스턴은 양키스와의 마지막 더블헤더를 남겨놓고 양키스에 1경기가 앞섰다. 1경기만 이겨도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 하지만 보스턴은 더블헤더를 1점 차와 2점 차로 모두 패했다.

1950년 보스턴은 마지막 12경기를 남겨놓고 양키스를 1경기 차로 쫓고 있었다. 하지만 그 12경기에서 5승7패에 그쳤고 우승은 양키스에게로 갔다. 1951년에도 보스턴은 13경기를 남겨놓고 양키스를 2경기반 차로 추격했다. 하지만 보스턴이 그 13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1승12패였다.

1938년부터 1951년까지, 보스턴은 몸부림을 쳤지만 양키스를 이길 수가 없었다. 보스턴 팬들에게는 꼴찌 시절보다 더 잔인한 시간이었다. 1951년을 기점으로 보스턴은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4기(1967~1995) 29년 : 소강상태, 그러나 더 치열해진
우승 – 양키스(리그 4회, WS 2회) 보스턴(리그 3회, WS 0회)

1936년부터 1966년까지 31년 동안 22번의 리그 우승과 16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양키스는 1967년부터 1995년까지 29년 동안은 리그 우승 4번과 월드시리즈 우승 2번에 그쳤다. 그 사이 보스턴은 3차례 월드시리즈에 나갔지만(1967, 1975, 1986) 모두 7차전에서 패했다. 그토록 보스턴의 우승을 원했던 야키는 1976년 세상을 떠남으로써 보스턴이 우승하는 모습을 끝끝내 보지 못했다.

이 시기 두 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특히 1970년대는 양 팀의 감정이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 1973년 펜웨이파크 경기에서 양키스의 포수이자 캡틴인 서먼 먼슨과 보스턴 포수 칼튼 피스크는 홈에서 충돌했고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1974년 펜웨이파크 경기에서 양키스 1루수 크리스 챔블리스는 3루타를 치고 나갔다가 팔에 관중석에서 날아온 다트가 꽂히기도 했다. 1976년 양키스타디움. 이번에는 홈에서 양키스 외야수 루 피넬라와 피스크가 충돌했고, 양 팀은 최악의 난투극을 벌였다.

이렇게 뜨거운 상황에서 1978년 양팀 역사상 가장 잊지 못할 시즌이 시작됐다.


덴트가 쏘아올린 공, 그린몬스터를 넘다
1978년 두 팀의 승부는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첫 90경기에서 보스턴은 62승28패를 질주하며 양키스와의 승차를 무려 14경기로 벌렸다. 2위와의 승차도 9경기. 우승은 확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보스턴이 이후 48경기에서 24승24패에 그치는 동안 양키스가 34승14패를 기록, 두 팀의 승차가 14경기에서 4경기로 줄어든 것. 급기야 양키스는 9월8일부터 11일까지 있었던 펜웨이파크 4연전에서 15-3, 13-2, 7-0, 7-4의 4연승을 거두는 이른바 ‘보스턴 대학살’(득점합계 42-9)을 통해 보스턴과의 승차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추월에 성공했다.

마지막 15경기를 남겨두고 양키스는 보스턴과의 승차를 3경기반으로 벌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보스턴이 14경기에서 12승2패를 질주, 최종전을 앞두고 양키스에 1경기 차로 따라붙은 것이었다. 정규시즌 마지막 날, 양키스가 클리블랜드에 패하고 보스턴이 토론토에 이김으로써, 두 팀간 최초의 원게임 플레이오프가 성사됐다.

펜웨이파크에서 벌어진 물러설 곳 없는 대결. 보스턴은 14승13패 투수 마이크 토레스가 24승3패 투수 론 기드리를 상대로 대선전, 6회까지 2-0으로 앞섰다. 7회초 2사 1,2루. 보스턴 팬들은 타석에 들어선 선수가 버키 덴트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엄청난 충격이 펜웨이파크를 강타했다. 덴트가 날린 타구가 그린몬스터를 넘어버린 것이었다.

이후 2점을 더 내줘 2-5의 역전을 당한 보스턴은 8회말 칼 야스트렘스키와 프레드 린이 구스 고시지를 상대로 적시타 2개를 날려 1점 차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9회말 2사 1,3루의 동점 기회를 맞이했다. 하지만 가장 믿었던 타자, 야스트렘스키가 친 공은 내야에 높이 뜨고 말았다.


5기(1996~2009) 14년 : 저주, 마침내 깨지다 
우승 – 양키스(리그 7회, WS 5회) 보스턴(리그 2회, WS 2회)

1996년, 양키스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5년간 4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 30년 만에 최고의 전성기를 열었다. 보스턴도 힘을 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늘 양키스가 있었다. 보스턴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6년 연속 2위를 했다.

1999년 챔피언십시리즈. 두 팀이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만났다. 양키스는 1차전에서 버니 윌리엄스가 로드 벡을 상대로 연장 10회말 끝내기홈런을 날린 데 이어, 2차전에서는 7회말 척 노블락이 동점 적시타, 폴 오닐이 역전 적시타를 날려 승리했다. 펜웨이파크로 옮겨져 치러진 3차전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7이닝 12K 무실점의 역투로 팀의 13-1 대승을 이끌었다. 2이닝 5실점으로 무너진 양키스의 선발투수가 로저 클레멘스여서 보스턴 팬들의 기쁨은 더했다.

4차전 8회까지 2-3으로 뒤진 보스턴에게는 ‘리베라도 인간이지 않겠냐’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9회초 리치 가르세스와 2루수 호세 오퍼맨이 그 희망을 날려버렸다. 리키 레데는 벡으로부터 9-2를 만드는 만루홈런을 날렸다.

2003년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에서 나온 애런 분의 홈런은 저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저주는 그 생명을 다했다.

루스를 판 1920년부터 2009년까지 지난 90년간, 두 팀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월드시리즈 우승 : 양키스 27회, 보스턴 2회
리그 우승 : 양키스 40회, 보스턴 6회
승률이 더 높았던 시즌 : 양키스 70회, 보스턴 20회

하지만 보스턴의 지난 10년은 앞선 80년과는 달랐다. 2000년대 보스턴은 양키스와 같은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보스턴이 양키스보다 많거나 같은 숫자의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20년대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다.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메이저리그가 사라지지 않는 한, 두 팀의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결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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